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구려-당 전쟁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삼국통일전쟁]]의 한 부분. [[고구려]]와 [[당나라]] 간의 전쟁.[* 명칭에 관한 문제는 [[고구려-수 전쟁#s-8|고구려-수 전쟁]] 항목 참조.] 수나라의 모든 원정이 고구려의 승리로 결말이 난 [[고구려-수 전쟁]]과 달리 이 전쟁의 경우는 2차까지는 고구려가 승전하였으나 3차에서 패배하고 멸망했다. 고구려가 [[나당연합군]]에 무너지긴 했지만 [[대막리지]] [[연남생]]의 항복으로 심장부인 [[국내성]] 일대가 [[당나라군]]에 넘어간 상태로 시작된 전쟁에서 2년에 걸쳐 사투를 벌였으며, 당은 최대 50만 이상의 대군을 동원하고 하북의 세금을 대고구려 전선에 전용하는 등 국력의 상당수를 소모하였다. 결국 고구려는 최종적으로 멸망하게 된다.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한 당나라 역시 3차에 걸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입은 내상을 굉장히 오랜기간 회복하지 못하였다. 이후 당나라는 약속을 깨고 동맹인 신라까지 집어삼키려다가 [[나당전쟁]]에서 패하는 굴욕을 겪으며 약속대로 백제 영토와 평양 이남의 고구려 영토를 신라에 내줘야 했으며[* 다만 무조건 굴욕적인 것은 아니며 신라도 고구려처럼 필사적으로 싸워야 했고 당의 침공이 워낙 거세어 멸망 위기에 몰리기까지 했다.], 당나라가 한반도 전선에 힘을 쏟는 사이, 서역에서는 [[토번 제국]]이 발흥하여 당나라의 서역 지배가 흔들리게 되었다. 이에 더해 당나라는 외세에 대한 지배력을 완전히 잃어 수많은 이민족이 발호하는 통에 결국 기껏 차지했던 대동강 이북의 요동지역 역시 신생국 [[발해]]에게 내주는 등 대표적인 [[피로스의 승리|승자 없는 전쟁]]이라 할 수 있다.[* 물론 발해는 고구려에 비하면 국력도 약했고 당나라와 극한의 대립각을 세우지도 않으며 문왕 이후에는 당의 패권을 순순히 인정했기에 굳이 의의를 덧붙이자면 눈곱만 한 이득이 있긴 했으나, 이후의 한족 왕조들이 고구려가 억누르고 있던 유목민들에게 차례로 당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국 손해로 보는게 맞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